• 글이 없습니다.
  • 글이 없습니다.
  • 글이 없습니다.
  • 글이 없습니다.
  • 글이 없습니다.
  • 글이 없습니다.

[지식채널e] 청년 윤동주의 ‘마지막 소풍’

작성자 정보

컨텐츠 정보

본문

bt05c982a600f3d877a8e41d4597104b80.jpg 이코노미퀸 박유미 기자 사진=EBS 지식채널e

<지식채널e> ‘광복 80주년 특집 4부작 일본으로 간 사람들 3부 - 윤동주의 소풍’ 편이 8월 14일 목요일 새벽 0시 15분, EBS1TV에서 방송된다.

1943년 초여름, 일본 교토 우지강에서 열린 한 소풍. 친구들과 밥을 먹고, 아리랑을 부르고, 강가를 거닐던 청년은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은, 그에게 생의 마지막 소풍이 되었다. 시를 쓰고 싶어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시를 쓴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었던 청년, 윤동주. 그가 꿈꿨던 ‘시인’으로서의 삶은, 헛된 꿈이었을까?

일본 교토의 하숙집 터에서 시작해, 체포되었던 시모가모 경찰서, 도시샤 대학 그리고 마지막 소풍지였던 아마가세 다리까지. ‘평범하고자 했던’ 윤동주의 하루,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청춘의 꿈과 마주한다.

“1992년 2월 16일에 첫 번째 윤동주 추모 모임을 했습니다. 그때 한 100명쯤 모였는데 절반이 일본인이었습니다.”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의 박희균 회장

시인 청년의 꿈은 채 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그의 모교 도시샤 대학은 윤동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도쿄와 후쿠오카, 교토 등지에서는 지금도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어로 시를 쓰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일본 땅에서, 지금은 윤동주를 기억하는 것이다.

<지식채널e>는 2017년부터 11개국, 400여 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기록한 사진작가 김동우와 함께 윤동주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 걸으며, 모국어로 시는 쓰는 ‘청년 시인’이 지켜내고 싶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되묻는다. 평범함조차 허락되지 않던 시대, 비범하게 살다간 청년 시인의 시선을 함께 한다.

이코노미퀸 박유미 기자 사진=EBS 지식채널e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488 / 1 페이지
RSS

방송

최근글


새댓글


  • 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