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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레전드 야구 선수 탄생할까"...양준혁♥박현선, 2세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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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7일 방송된 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한 양준혁♥박현선이 결혼 한지 3년이 되는 지금, 임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양준혁 부부는 "나는 정자왕이고 아내 나이가 36살, 난소 나이가 20살이라 완전 홈런 친 기분이었다"며 "의사가 곧 임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벌써 3년이 지났다"고 밝혔습니다. 양준혁의 아내 박현선도 "결혼 초에는 자녀가 빨리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임신이 쉽지 않아서 마음을 비우고 신혼을 즐기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2세가 아들이면 야구, 딸이면 음악을 시키기로 계획도 세웠었다는 두 사람. "마음으로선 3명도 낳고 싶다. 그런데 임신하기에 어린 나이는 아니더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비췄습니다.

 

야구 레전드 양준혁의 아들, 팬들도 기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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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생 올해 나이 53세인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양준혁은 1988년생으로 자신과 19살이나 차이나는 박현선씨와 결혼하였습니다. 아내 박현선은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출신의 음악교사 지망생이라고 합니다.

전 야구선수 양준혁은 과거 타격의 신이라고 해서 '양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야구계의 눈부신 활약을 했던 인물인데요. 은퇴 시점에서 3000타석 이상 타자들 중 KBO 통산 wRC+ 1위, 야수 WAR(스탯티즈, KBreport) 1위 자리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wRC+ 200을 2번 넘겨본 유일무이한 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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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슬럼프 시절을 제외하고는 전부 3할대의 타율을 기록, 배트를 거꾸로 들고 쳐도 3할이라는 비유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거구의 몸이면서 타율 위주의 중장거리 교타자라는 플레이 스타일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야구해설가, 예능인, 양식장 사업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다 안타, 최다 타석, 최다 홈런, 최다 사사구, 최다 2루타, 최다 루타, 최다 장타, 최다 득점, 최다 타점, 최다 출장, 최다 타수에 1위로 랭크된 '꾸준한 기록'의 사나이인 양준혁, 그는 2세가 아들이면 야구를 시킬 것이라는 포부를 전한 바 있습니다.

 

양준혁♥박현선, 아직 남은 날들이 많아... 2세 기대감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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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스포츠 스타들의 대를 잇는 사례들을 보고 양준혁 또한 아들과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렸던 것일까요.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한 양준혁♥박현선은 2세를 간절히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 누리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직 결혼 3년 차밖에 되지 않은 양준혁♥박현선, 아이를 만들 수 있는 날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요. 실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임신테스트기를 해보는 등 간절한 마음으로 2세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임신에 난항을 겪고 있는 지금 야구 팬들 또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은 2세가 한국의 스포츠역사를 다시 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대를 이은 스포츠 슈퍼스타 누구 있나
축구계 레전드 차범근 - 차두리

레전드 운동 선수들의 2세 소식은 항상 그 운동계에 주목을 받는 편입니다. 탄탄한 피지컬과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쌓아둔 부모의 대를 이어 2세가 활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 받은 2세 스포츠 슈퍼스타는 누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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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차범근-차두리' 부자지간입니다. 차범근은  고려대학교,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공군 축구단에서 활약한 뒤 만 26세의 나이에 당시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어 04 레버쿠젠 소속으로 뛰었습니다. 차범근은 불과 24세의 나이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00경기 출장을 기록했고, 국가대표팀 통산 최다 출장 3위(130경기), 최다 득점 1위(58골)를 비롯한 여러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차범근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두팀에서 UEFA컵 2회 우승 및 DFB 포칼 1회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단언컨대 80년대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죠. 현재는 축구 해설가이자 지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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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 온라인 커뮤니티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에도 진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다가 2013년 K리그 클래식 FC 서울로 이적하였고 2015년 10월 31일 FA컵 우승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국제 대회는 물론 유럽과 한국에서 뛰는 동안 어떤 선수를 만나더라도 압도적인 몸싸움 덕분에 차이콘, 폭주기관차, 차미네이터, 두리케라톱스, 차이언맨, 인간흉기, 인간 수류탄, 차두라리스크, 발업 질럿, 차드로이드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으나, 둔탁한 볼터치에 결정력이 좋지 않아서 윙 포워드로 내려가다 윙어까지 내려가 뛰기도 했습니다. 1.FSV 마인츠05에서 뛰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가르침에 의해 수비수로 전향한 후 차두리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는데요.

수비수로 전향한 뒤에는 타고난 철벽같은 몸으로 센터백이 잠깐 비었을 때 빈자리도 훌륭히 메꿀 수 있고 엄청난 순간 가속으로 인해 공격도 가담할 수 있는 라이트백으로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차두리의 활약은 그의 강력한 피지컬 덕분이었는데요. 그의 신체 능력은 아버지 차범근에게서 모두 물림받았다고 합니다. 진정한 재능의 대물림이 아닐까요.

 

한국 농구 역사를 다시 쓴 허재와 허웅-허훈 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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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허재와 허웅-허훈 부자들입니다. 허재는 농구 국가대표팀에 있던 농구계의 레전드인데요.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 슈팅 가드였지만, 국가대표팀에선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대학 시절에는 센터도 소화했습니다.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를 논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선수이자 모든 분야를 망라한 불세출의 슈퍼스타였습니다.

허재는 여러 부분에서 뛰어났었지만 특히 자로 잰 듯한 슛 폼을 가졌는데 점프 후 슛 릴리즈가 굉장히 빨랐고, 공이 몸에 붙어다닌다고 하셔도 무방할 정도의 드리블러였습니다. 징크스, 슬럼프 없이 선수생활 시작부터 39살의 노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를 넘을 선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현재는 해설가이자 지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허웅-허훈 형제 또한 농구 선수가 되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가치를 증명해보이겠다"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다수의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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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웅 - 온라인 커뮤니티

허웅 선수는 2017 존스컵까지만 해도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2017 아시아컵에서는 전준범과 함께 대회 최강의 외곽 조커로서 맹활약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슈팅력이 매우 좋은 선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3점슛 캐치앤샷, 무빙샷, 스텝백 등 스킬이 다양하고 정확도 또한 준수합니다. 

현재 허웅 선수는 2번 포지션에서 본인의 장기인 폭발적인 득점 능력을 바탕으로 보조 리딩과 핸들러 롤을 겸하는게 가장 이상적인 역할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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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 - 온라인 커뮤니티

허훈 선수는 수원 kt 소닉붐의 간판 스타이자 KBL 최고의 가드입니다. 현재 국가대표에 빠짐없이 선발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입니다. 용산고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2012, 2013 최우수 선수상을 획득하고 아버지와는 달리 형 허웅과 같이 연세대로 진학, 연세대학교 스포츠레저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연세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쳐 2014년 신인왕을 탔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아버지의 농구 재능을 형인 허웅보다 더 많이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허재 감독의 현역 시절 몸이 연상될 정도로 신장은 작지만 웨이트가 매우 잘 갖춰져 몸의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야구계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정후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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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야구코치이자 전 야구선수 이종범과 그 아들 이정후 선수의 사례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스포츠스타 2세들이 부모의 그늘 아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정후 선수는 2017년 프로로 데뷔하자마자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이종범이 거둔 데뷔 시즌 성적에 버금갈 정도의 성과를 거두어 야구계에 엄청난 바람을 몰고올 선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야구천재로 불리던 이종범 선수는 해태-KIA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성구회의 제4호 회원입니다. 해태 왕조 말년인 1993, 1996, 1997년 3차례 우승과 KIA 인수 후 첫 우승인 2009년을 포함해 총 4차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대표적인 수상기록으로는 통산 정규시즌 MVP 1회, 한국시리즈 MVP 2회, 골든글러브 6회, 미스터 올스타 1회입니다.

또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참가해 각각 금메달과 4강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주루 능력과 유격수라는 포지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5년 동안은 해당 기간 동안 통산 홈런 2위라는 뛰어난 펀치력과, 통산 타율이 가장 높은 0.332를 기록할 정도로 정교한 컨택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현재는 은퇴 후 해설과 지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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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 온라인 커뮤니티

이정후는 고교 시절 기본 포지션이 유격수였으나, 프로에 와선 타격 능력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하여 2017년 10년 만의 순수 신인왕 및 순수 고졸 신인왕이 되었습니다. 정교한 타격과 선구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듯한 배트 컨트롤로 안타를 생산해 내는 컨택 능력이 특징으로, 5년 연속 골든글러브와 2년 연속 타격왕, 2022년 MVP 수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 실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척 시대 히어로즈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김현수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중장거리형 교타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정후가 고평가받는 점은 놀라운 성장세인데, 데뷔 이후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약점을 정확히 보완하여 매년 더 뛰어난 시즌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5년 가까이 빠짐없이 보여줘왔습니다.

야구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 중 하나가 '성장세'이므로, 현 시점 '성장세' 면에서 리그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정후는 아직 전성기 나이가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전성기에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으로 전문가들에게 기대받고 있습니다.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가 야구를 시작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극심히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야구 2세로서 견뎌야 할 시련이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그러나 이정후 선수가 슬럼프 없이 매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활약을 보이면서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활약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이종범 또한 아들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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